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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봉 한 라라랜드 집에서 본 후기 / 꿈에 관하여 (LA LA LAND, 2016)

취향/영화

by 여문 2021. 1. 2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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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감상 후 생각을 나누는 글로, 줄거리가 대부분 생략되어있고, 디테일이 조금 틀렸을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라라랜드

 

 최근 라라랜드가 극장에서 재개봉을 했던데, 몰랐다.

나는 그냥 네이버 시리즈온에 남는 캐시가 있길래, 예전부터 보고싶어했던 라라랜드를 결제해서 보게 되었다. 

 

첫 인상은 생각보다 별로인데?

 한국 첫 개봉 당시부터 이미 국내외로 호평 일색이였던 영화임을 기억하기 때문에, 언젠가 한번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미루고있었다.

아껴두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잘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나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이 영화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꽤 많이 봐왔기에, 초반부터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템포가 빠르고 시간대비 많은 인풋을 얻을 수 있는 유튜브 컨텐츠를 훨씬 많이 소비해왔기에,

'라라랜드처럼 느긋한 영화는 내게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인가?'

'일단 끄고 나중에 마음에 여유가 생긴 후에 볼까?'

영화 시작 10분정도까지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영화를 끄지 않았고, 느긋한 영화 같은 말은 내 선입견이였고,

 

 

지금 내 갤럭시 탭의 배경화면을 라라랜드 포스터로 바꿔놓았다.

이 영화가 나에게도 큰 울림을 준 것이다.

 

 

여담) 오프닝장면을 높게 평가하는 분들도 많은 것을 안다.

사실 나도 지금 다시 본다면 감탄하며 볼 것 같지만, 말 그대로 첫인상을 말한 것임을 감안해주시길.

 

지금부터는 조금 자세히 말해보겠다.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어렴풋이 들었던 것은 #뮤지컬, #멜로, #영상미 같은 키워드 들이였다.

나는 태블릿을 이용해 영화를 봤기에 영화관의 스크린과는 전해지는 감흥이 다를 것을 감안하긴 해야겠지만, 들려오는 이야기들 덕에 기대를 많이해서인지 영상미에 대해서 엄청난 감흥이 있는 것은 아니였다. 물론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았지만, 생각만큼 영상미에 압도당하고 감탄이 나오는 것을 경험하진 못했다. 극장에서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기도 한다.

 

사실 나는 영화의 본분이 영상 자체로 눈을 즐겁게해주는데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며 감탄했던 부분은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제목 '라라랜드'는 헛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을 빗대는 뉘앙스의 단어라고 한다. 잘 어울린다.

모두가 바쁘게,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은 꿈을 쫒고있었다.

미아는 학교를 자퇴하고 6년간 무명 배우 생활을 했고, 세바스찬은 사기를 당한 후에도 재즈음악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미아는 파트타임잡을 하며 여러 오디션장을 전전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는 듯 했고,

세바스찬은 생계유지를 위해 건반연주가 필요한 식당, 행사장 등에서 간간히 연주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우연히 둘은 만났고, 어찌어찌 연인이 되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그저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가지던 그때, 미아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정기적인 연주는 있니?'

'모아둔 돈은 있니?'

낭만적인 꿈을 쫒는 사람들앞에 현실과 책임이라는 무거운 단어들이 놓여졌다. 둘은 더이상 어린이도, 학생도 아니였다.

만약 서로에게서 미래를 봤다면, 단지 지금 당장 두 사람이 행복하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는 안정인 수입, 큰 수입이 없어도 자기 한 몸 정도야 챙길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아와 세바스찬 모두 수입이 예고 없이 끊길 수 있었고, 모아둔 돈도 많을리 없었다. 현실과 책임은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을 외면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실을 보는 눈과 책임감을 갖는 태도는 필요하다. 사실, 그래야 지금 자신이 어떤 상태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 수 있기도 하다. 의외로 이것은, 마냥 꿈을 포기해야함을 시사하지는 않는다.

세바스찬은 비정기적 연주로 어느정도 돈을 벌고 있었지만, 넉넉하진 않았을 것이고 모아두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그냥 흘러가게 뒀다면, 세바스찬의 꿈이였던 '재즈 카페'와 재즈의 부활(?)은 어느 시점에서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자신의 현재 상태를 봤고, 변화를 선택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의 방향성과 거리감이 있는 키이스의 밴드로 들어간 결정이 최선이였는지는 알 수 없다.

음악 외에 다른 방법으로 안정적 수익을 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고, 혹 조금 더 기다렸다면 다른 기회가 찾아왔을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일반 직장이나 파트타임잡을 선택했다면 카페 개업까지 가는 시간은 훨씬 오래걸렸을 것이고,

다른 기회를 기다리는 것은 불확실성이 너무 컸기 때문에 적어도 합리적 결정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에게 맞지 않는, 내키지 않는 음악을 연주하는 삶에 익숙해졌던 세바스찬에게 또 다른 현실을 볼 기회가 찾아온다.

어느새 내키지 않았던 음악, 바쁜 생활, 사람들의 환호에 익숙해졌고,

소중한 연인과 자신이 원래 간직해왔던 꿈은 점점 자신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키이스의 밴드에 들어가 얻은 인기와 돈도 현실이였지만, 그 이면 역시 현실이였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다툼

 나에게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미아와 세바스찬의 다툼이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였다.

개인적으로 재미있다고 느낀 점은, 영화 안에서 다투는 것은 두 사람이지만, 마치 꿈을 쫒는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미아에게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지 말라고 했던 세바스찬이지만, 밴드에 들어가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그 시간동안 두사람이 가진 시야의 각도는 조금 달라지게 된다. 조금 달라진 각도, 처음엔 별거 아니지만 선을 이어갈수록 두 선의 거리는 끝없이 벌어지게 된다.

어느새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지 말라고 했던 세바스찬 자신이 사람들을 신경쓰게 되었고, 그는 결국 방아쇠를 당기고 만다. 

 

 

 

"You are an actress! What are you talking about?!"

넌 배우잖아 무슨말을 하는거야?

 

사실, 배우든 음악가든 다른 예술가든, 그 직업이 자신을 부양할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퍼포먼스/작품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미아와 세바스찬만의 복잡한 상황이 있었기에 보면서도 아차 싶은 순간 이였다. 저 말을 마치자 마자 배경음악이 꺼지고, 미아의 허탈한 웃음과 함께 정적이흘렀다. 

 

 

이쯤 보다가 생각난 영상 하나가 있다.

최근 본 이연님의 영상 '예술한다고 가난하게 살 필요 없어요' 

 

 

 https://youtu.be/IObmtcbnZ5s

 

우연인가 싶은데, 라라랜드에서 등장한 사진을 레퍼런스해서 그린 영상이 있기도 했다.

 

이 영상을 본  뒤 내게 남은 것은

'내 창작에게 나를 부양할 책임을 지우지 말고, 내가 내 창작을 부양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꼭 이 아트폼을 가지고 돈을 벌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어린 예술가(지망생)들은 예술가의 꿈을 가진 뒤, 달력이 하나씩 넘어가면서 현실적인 고민들에 부딛히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음악에, 그림에, 글에 내가 쏟은 시간들과 돈이 있는데, 이것이 내게 돈을 벌어다 줄 수 있을까? 부터 시작해서 그 아트폼에게 정말 많은 책임을 지우려고 하게 될 수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저 영상은 조금 다른 시야를 갖는데 큰 도움이 되는 듯 해서 첨부했다.

물론,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을 공유해주는 영상이기때문에,

각자의 상황에 따라 와닿지 않거나 틀렸다고 생각될 수 있을 여지는 있다.

 

이상적이지만은 않은 결말

"꿈을 이루게 된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 사랑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는 결말이였어도 이 영화는 아름다웠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이 이야기를 더 아름다운 이야기로 만들었다고 믿는다.

이 영화는 굉장히 '라라랜드' 같은 영화임과 동시에, 수많은 현실적 부분들을 보여준다.

존중 받지 못하는 오디션장, 원하지 않는 음악을 연주해야하는 무대 등이 대표적인 예시가 될 것 같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결국 둘다 꿈을 이뤘다. 각자 자리에서 멋지게 빛나며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면 드는 생각은

'역시 사람은 꿈을 쫒아서 살아야지! 꿈이 최고야!' 같은 것이 아니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할 것 같다.

영화가 끝난 뒤, 굉장히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라라랜드는 '꿈을 갖는 것의 아름다움' 도 보여주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점이기도 하다. 

 

아주 약간 의아하기도 했던 부분

굳이 트집을 하나 잡자면, 내가 느끼기엔 세바스찬은 이미 출중한 실력을 갖췄던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미아는 오디션장에서 '오버한다'는 평을 받기도 했고, 일인극 후 관객도 심한 악평을 했는데,

그 후 바로 캐스팅이 되고 승승장구했다는 것이, 아주 약간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일반 관객과 미아를 캐스팅한 디렉터의 관점이 다르기도 하겠고, '오버'했던 오디션과 시간적 갭도 있다.

그리고 일인극을 직접 썼다는 것 등의 요소도 무시할 수 없는데다가,

영화 후반 쯤에는 이미 관객들이 미아를 응원하고 있는 상황일테니,

드라마틱한 캐스팅은 오히려 굉장히 적절한 전개로 작용한 것 같다.

나도 이런 말을 하고는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엥? 갑자기 캐스팅은 억지 아니야?'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아니라

'와, 미아가 캐스팅 되다니 너무너무 잘됐다' 라며 감격했던 것 같다. 

 

마치며

좋은 영화를 봤다.

시리즈온에서 1000원주고 봤는데,

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다시 생각하니 정말 싼 값에 좋은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가 나에게는 단순히 2시간정도를 즐겁게 보낸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좋은 시간이였다.